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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 훕스굴호수 여행기

  • GT 이남규
  • 조회 1242
  • 2014.03.0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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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비경 훕스굴호수를 가다

 

초원과 사막의 나라로 알려진 몽골에 우리 제주도의 1.5배나 되는 거대한 담수호 훕스굴호가 있다. 세계 총담수량의 거의 2%나 된다는 이 호수의 물은 전혀 오염되지 않아, 그대로 떠 마셔도 좋을 만큼 깨끗하다. 러시아의 바이칼호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의 하나로, 4,000만년 전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 신비한 호숫가에서 7월 초, 몽골아마추어무선연맹 창립 40주년 기념 한국-일본-몽골의 3개국 국제 ARDF(아마추어무선방향탐지) 대회가 열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선수들이 참가했다.

 

 

“몽골의 스위스”라고 하기도 하고, 몽골사람들이 “어머니”라고 신성시하고 있는 훕스굴호가 아직도 오염되지 않고 옛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이 나라가 폐쇄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몽골 북방 러시아 국경에 가까워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몽골이 1996년, 옛 소련권에서 벗어나 개방된 다음부터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지만, 어려운 교통편 때문에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8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훕스굴호로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은 이 호수의 캠프 바로 앞까지 가는 헬리콥터를 타는 것이다. 헬리콥터는 시간 당 전세료가 미화 500달러다. 울란바토르-훕스굴은 헬리콥터로 3시간 정도 걸리므로 왕복 3,000 달러 정도가 든다. 이 헬리콥터는 20명까지(짐이 많으면 15명) 탈 수 있으므로, 1인당 왕복비용은 200달러 정도인 셈이다. 인원수만 맞으면 다른 방법에 비해서 별로 비싸지 않고, 시간도 상당히 절약되지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러시아제 낡은 회전익 항공기를 탄다는 데 대해서 저항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기야 이 나라에서는 고정익 항공기라고 별로 더 안전한 것은 아니다. 국내선의 주력기가 되어 있는 54인승 러시아제 쌍발 터보프롭 안토노프-24는 낡을 대로 낡은 옛날 서골 버스를 연상시킨다. 얼마 전에는 이 여객기 한 대가 추락해서 20 여명이 사망했는데,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모두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일본팀 단장은 사색이었고, 그 후부터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조종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차선의 방법은 훕스굴호 남단에 있는 마을 핫갈까지 전세기를 타는 것이다. 핫갈에서 훕스굴호의 캠프까지는 다시 2시간 정도 걸리는 39km의 험한 길을 지프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그러나 핫갈의 비행장은 풀밭으로 된 간이활주로이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는 끊어지는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 팀 15명과 일본 팀 7명은 가장 일반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울란바토르에서 국내선으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모론(무렌)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훕스굴로 가는 방법이다. 대회주최자인 몽골측 설명으로는 150km 정도 된다는 것이어서 대단치 않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큰 오산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우리는 지프로 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는 이 길을 거의 9시간이나 버스에서 흔들려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울란바토르를 떠나 모론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반. 여기서 새벽에 먼저 출발한 일본팀과 합류해서 마을에서 미리 저녁을 먹고, 버스 한 대와 트럭, 지프 각각 한 대에 분승해서 모론을 출발한 것은 오후 7시였다. 북위 50도 지역인 이곳은 아직 한낮의 섭씨 30도가 넘는 뙤약볕이었다. 출발하면서 지프운전사가 걱정했던 것처럼, 곧 우리 일행은 언덕을 오를 때마다 엔진과열로 지체되기 시작했다. 

 

몽골의 도로는 특별히 도로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차가 많이 다닌 자리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여기 저기 패이고 돌이 굴러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도중에 갑자기 없어지는 수도 있다. 다리는 대부분 낡아서 멀리 자갈바닥을 돌아가야 한다. 도로표지는 처음부터 없고, 도중에 휴게소나 주유소도 없다. 버스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30km 미만이다. 험한 비탈을 만나면 승객은 내려서 걸어가야 하고, 때로는 뒤에서 밀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인의 전통일까. 자동차를 다루는 몽골인 들의 능숙한 솜씨는 그에 못지않았다. 운전기사는 그 험한 길을 마치 말을 타듯 차를 몰았다. 고장이 나면 그들은 지체 없이 고쳤다. 러시아제 중형버스 파스나 군용지프 와즈는 처음부터 고장을 예상한 듯, 쉽게 고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파스는 앞 패널을 열면 엔진이 그대로 드러났고, 운전석에 앉은 채 손을 내밀어 엔진을 조정할 수 있었다. 시동은 우리나라에서 이제 볼 수 없게된 스타팅 로드를 돌려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은 그 힘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말썽을 부린 것은 내가 탄 낡은 러시아제 지프였다. 처음부터 오른쪽 앞바퀴가 코드가 보일 정도로 닳아서 험한 길에 괜찮을까 했는데, 엉뚱하게 팬벨트가 자꾸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응급조처로 다시 움직였지만, 결국 목적지까지 거의 다 도착해서는 완전히 손을 들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지프는 다시 모론으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울란바토르까지 갔다고 한다. 3,500cc 엔진에 4륜구동형으로 되어 있는 이 지프는 몽골의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짐을 싣고도, 뒷좌석에 4명, 앞좌석에 운전기사 이외에 2명을 더 태우고도 험한 길을 달린다.

 

캠프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반. 덕분에 우리는 하늘에 가득한 별과 은하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오염이 없고, 건조한 몽골의 하늘에서는 시력이 한계일 뿐이다. 그 후에는 별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여름에 밤이 아주 짧기 때문이다.

우리는 난로에 장작을 때서 훈훈해진 겔(몽골식 텐트)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눈을 붙였다. 그리고 일어나 밖으로 나온 우리는 “몽골의 스위스”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그 곁에 작은 호수, 군데군데 키가 큰 아름드리  침엽수림, 그리고 멀리 신비한 회색으로 빛나는 산이 보였다. 주위는 어디나 짙은 풀밭이었고, 유목민들이 기르는 소, 야크, 양, 염소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한 하늘을 배경으로 온갖 기교를 부린 환상적인 구름이 있었다. 

     

호수의 물을 소문 그대로 투명해서, 바닥의 자갈이 그대로 보였다. 자갈 중에는 화산활동의 결과 같은 곰보돌이 많았다.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물은 얼음처럼 차서 오래 들어가 있을 수 없다. 이 호수는 5-6 월까지도 얼음으로 덮여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녹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 호수는 길이가 136km, 폭은 36km, 가장 깊은 곳은 262m이고, 면적은 2,620 평방km로,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담수호라고 한다. 해발고도는 1,645m나 되지만, 고산증세 같은 것은 별로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시야가 미치는 곳은 그 일부뿐이고, 실제로 바다 같은 호수를 보려면 크루즈선을 타고 나가야 한다고 한다. 바다가 없는 몽골이지만, 몽골은 이 호수 때문에 해군함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훕스굴 여행사(Huvsgul Travel)사가 운영하는 토일록트(Toilogt) 캠프였다. 세 사람의 침대가 놓인 겔이 16개, 식당, 수세식 화장실, 세면실, 그리고 예약이 필요하긴 하지만 사우나와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실까지 있었다. 저녁에는 발전기를 돌려 전등을 킬 수 있다. 이 정도면 몽골에서는 호화시설이다. 세끼 식사를 포함해서 1인 1일 숙박료가 50달러인 겔 대신 텐트를 칠 수도 있지만, 밤에는 기온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저녁에는 5명으로 구성된 민속공연도 있는데, 가수나 무용수가 낮에는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청소를 하는 등 총력체제다. 여가수 위앙가양은 음악학교를 다닌다는 본격적인 가수이고, 민속악기를 다루는 나란체첵양은 대전 엑스포에서도 연주를 했다는 실력파다.

 

캠프의 위치는 호수의 서남쪽이다.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호수 북쪽의 한에도 마을과 캠프가 있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접근하기 어렵다. 매니저 푸레도르즈(Purevdorj)씨의 말에 의하면, 1년에 이 캠프를 찾는 사람은 1,000 명 정도로, 60%는 미국인이라고 한다. 일본인은 20% 정도이고, 한국 사람은 작년에 50명 가량 다녀갔다는 것이다. 1년이라고 해도 관광객이 머물 수 있는 것은 5월에서 9월말까지 4개월 동안뿐이고, 그 밖의 기간은 너무 추워서 철수한다고 한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원시적인 환경 속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긴다. 호숫가를 거닐기 싫증이 나면 말을 탈 수 있다. 그렇게 크지도 않고, 양순한 몽골 말을 타는 데 한 시간에 2 달러다. 혼자서 달려볼 수도 있지만, 몽골인이 말을 타고 끌어 주기 때문에, 처음 타는 사람도 안심하고 승마를 즐길 수 있다. 좀 더 흥미가 있는 사람은 몽골인 가이드(하루 10달러, 영어를 하는 가이드는 20달러)를 고용하여, 하루 또는 1주일 코스를 잡아서 산으로 트레킹을 가서나, 호수 주변을 말을 타고 돌아볼 수도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면허료로 하루 10달러를 내면 실컷 즐길 수 있다. 낚시터까지는 걷거나 지프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4인승 모터보트를 빌려 타는 방법도 있다. 모터보트는 1인당 한 시간에 3달러다. 호수 물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깨끗해져서, 완전히 잉크색이 된다. 투명도는 200m 바닥까지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언젠가는 온 세계 사람들이 이 호수의 물을 음료수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저 없이 보트 밖으로 손을 내밀어 물을 떠서 마셨다.

 

오염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바이칼호와는 달리, 훕스굴호 주변에는 몇 군데 캠프와 유목민의 겔 이외에는 전혀 오염원이 없다. 훕스굴지방정부에서도 환경문제에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어, 이곳 환경국은 가장 권한이 강력한 기구가 되어 있다고 한다. 매니저 말에 의하면, 캠프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이나 오염물질은 모두 트럭으로 모론으로 가져가 처리한다고 한다.  

 

우리가 갔던 곳에서는 큼직한 송어와 메기 종류가 많이 잡혔다. 자료에 의하면 이 호수에는 90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주로 릴낚시이고, 낚싯밥이나 미끼는 필요 없다. 그저 호수에 멀리 던져 놓고 감아 당기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서는 “월척”이란 기준은 전혀 의미가 없다. 모두들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흥분했지만, 역시 운은 있는 법이어서 던지는 대로 잡아 올린 사람도 있었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은 사람도 있었다.

 

잡은 고기는 식당에서 프라이를 해서 줄 뿐 우리처럼 다양하게 먹는 법은 모른다. 몽골인 들은 원래 강이나 호수를 싫어하고,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몇몇은 회를 떠보자고 했지만, 민물고기에 대한 공포감으로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캠프 매니저는 우리 이전에 회를 해서 먹은 사람들이 있고, 절대로 안전하다고 장담했다.

 

매니저의 말에 의하면, 사냥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호수 근처 산과 숲에는 곰, 사슴, 엘크, 늑대 같은 야생동물이 68종류가 있고, 사냥시즌은 9월에서 10월까지다. 사냥 면허료는 1,000 달러이고, 이 밖에 여러 가지 잡비용이 붙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것이다. 총은 가지고 들어와야 하는데, 여행사에서 통관을 비롯한 모든 절차를 밟아 준다고 한다.

 

또 이 호수에는 244 종류의 새가 살고 있어 탐조가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5월과 6월이 탐조여행 시즌이라고 한다. 호수주변에는 750 종류의 식물이 있다. 식물학자가 아니라도 초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할미꽃 등 여러 종류의 야생화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캠프에서 낚시터로 가는 도중에 순록을 기르는 차탄족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훕스굴호수 일대에 살고 있는 3개 부족(부리앗족, 다캇족, 차탄족)의 하나로, 몽골 특유의 겔과는 다른 간단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끊임없이 이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만난 차탄족은 할머니와 부부, 그리고 아이 셋으로 구성된 6 인 가족이었는데, 좁은 원추형 천막 안 젖은 바닥 위에 가죽과 모포를 깔고 그 위에 그냥 앉아 있었다. 한복판에 놓인 난로와 벽에 걸린 몇 가지 도구 이외에는 이렇다 할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순록은 30 마리 정도였는데, 더위가 벅찬 듯, 모두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차탄족은 순록에서 얻은 가죽, 젖, 고기로 살아가고 있다. 차탄은 몽골말로 순록이란 뜻이다.

 

차탄족은 오늘 날 30-40 가족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부족과 교류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우유차(실은 순록의 젖으로 만든 차)와 치즈를 대접하는 풍습은 다르지 않았다.

 





*아이니 쇼디

 

몽골인들은 노래를 좋아한다. 이 점은 우리나라 사람과 마찬가지이지만,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화음을 맞추어 멋지게 합창까지 해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버스여행 중 우리들은 여러 번 몽골 사람들과 노래대결을 해 보았지만, 우리는 번번이 개인플레이로 끝나버리고, 그들의 합창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아마도 오랫동안 러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년 여름, 역시 아마추어무선을 하기 위해 고비사막으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이틀 동안의 버스 여행 중 몽골 젊은이들이 불렀던 한 노래에 큰 인상을 받았다. “아이니 쇼디(철새)”란 이 노래는 초원을 날아가는 철새의 울음소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노래 소리를 듣고, 달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특히 “철새가 돌아오기 전에 당신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후렴은 이 노래의 압권이다. 그 후 나는 어렵게 그 가사와 곡의 테이프를 얻어, 이번 여행 때 가지고 가서 우리 선수들과 연습을 했다. ARDF경기가 끝난 다음, 파티에서 우리가 이 노래를 몽골선수와 함께 부르자 그들은 열광했다.

 

이번 여행에서 배운 “세레게르 하드니”란 노래는 떠나간 연인을 꿈속에서 본다는 내용의 노래로, 단순하면서도 짧게 반복되는 특이한 멜로디가 인상적이었다.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몽골사람들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ARDF(Amateur Radio Direction Finding)

 

ARDF는 아마추어무선을 야외로 가지고 나가서 스포츠로 만든 것이다. 산이나 숲 속에 송신기를 5 개 감추어 놓고, 수신기로 그 신호를 잡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찾아내는 경기다. 처음에는 영국 귀족의 여우사냥과 흡사하다고 해서 폭스헌팅(Fox hunting)이라고도 했는데, 요즘은 그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이름을 바꾸었다. 옛 공산권 나라에서는 이것을 국방스포츠로 육성했다. 무전기와 전파의 특성을 숙지해야 하고, 산을 달릴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선수층이 넓고,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번 대회에는 주최측에서 초청을 했어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번 몽골 아마추어무선연맹 창립 40주년 기념 대회에서는 물론 주최국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우세였지만, 한국선수들도 144MHz 시니어 개인전에서 금메달 과 동메달, 3.5MHz 시니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땄다. 단체전에서는 한국팀이 144MHz 시니어 금메달 및 올드타이머 동메달, 3.5MHz 시니어 은메달, 올드타이머 동메달을 땄다.   

 

* 훕스굴 호수의 전설

 

아주 옛날, 훕스굴호수는 아름다운 산과 숲,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느 날, 거대한 외눈 도깨비가 나타나서, 사람과 동물을 잡아먹고, 호수의 물을 모두 마셔 버렸다. 이 도깨비는 사라진 다음 호수는 아무도 살지 않은 황량한 곳이 되었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말을 끌고 나타났다. 할머니는 살만한 곳을 찾아서 호수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엄지손가락만 한 소년을 만났다. 할머니는 그 소년과 함께 살기로 하고, 물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커다란 바위를 발견했다. 할머니가 바위를 들어올리자 물이 솟아 나왔다. 이들은 근처에 집을 세우기로 했다. 할머니는 샘터를 만들어놓고, 물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항상 바위로 샘을 막아 놓았다.

 

소년은 금방 자라나 정상적인 아이처럼 되었다. 어느 날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졌다. 소년은 그 소녀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3년 후, 그 소녀가 다시 나타나 할머니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은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샘을 막아놓는 일을 잊었기 때문에 물이 흘러나와 홍수를 이루었다. 그러자 물을 싫어하는 도깨비가 나타나 다시 물을 모두 마셔버렸다. 건장한 청년이 된 소년은 그 도깨비를 죽이고, 산봉우리를 잘라서 덮어놓았다. 그러나 물이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에, 할머니는 물속으로 들어가 바위로 샘을 막아놓았다. 이 때문에 호수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익사했다. 슬픔에 잠긴 소년과 소녀는 호수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오늘 날 호수 한복판에 있는 큰 섬이 바로 도깨비를 덮어놓았다는 산봉우리다. 조그만 섬은 할머니가 샘을 막아 놓아 놓았다는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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