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여행의또다른이야기.
  • 몽골최고관리자1,16102-18
    @노을이 물드는 초원에서 마두금 가락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가수제국의 설계자 우구데이칭기스칸이 후계자로 선택한 우구데이(오고타이1229-1241)는 아버지의 천재성, 열정 등을 물려받지 못했으나, 뛰어난 감각과 끈기가 있었다. 그는 관대하고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우구데이는 몽골제국의 수도를 카라코름에 건설했다. 거란인 야율초재와 일찍이 칭기스칸…
  • 몽골최고관리자96002-18
    *칭기스칸의 전설 야외 공연 장면. @2대 칸. 우구데이가 실크로드의 중심지 하라호름에 수도를 건설했다. 지금은 폐허로 변했지만 에르덴조 사원이 남아 있다.불교의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스투빠(탑)으로 건축된 에르덴조 사원 전경칭기스칸은 생전에 네 아들에게 각자 울루스(Ulus. 일정수의 부족)와 유르트(Yurt 목초지)를 속령으로 분할해 주었다. …
  • 몽골최고관리자68202-18
    제 1대 젭춘담는 열네살 때 티베트로 유학한 뒤, 몽골로 돌아왔다. 그리고 티베트에서 함께 데리고 온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라싸의 간단사를 모델로 같은 이름의 사찰을 지었다. 사찰이 지어질 당시, 이 지역은 후레라는 초원지대였다. 이곳에 간단사가 지어진 것이 오늘날 울란바타르가 생겨나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달라이라마의 탄생미국이나 유럽에서 달라이라마에 대한…
  • 몽골최고관리자1,72402-18
    42년간 전쟁 1216년, 몽골군에 쫒긴 거란인 9만명이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로 쳐 들어왔다. 거란인들은 약탈을 하며 고려땅을 마구 헤집고 다녔다. 1218년 몽골과 몽골의 영향권에 있던 포선만노는 <거란군을 토벌하고 고려를 구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총 3만의 병력을 이끌고 들어왔다. 당시 몽골 장수 카치운은 고려서북면 원수부에 사신을 보내 군량…
  • 몽골최고관리자1,15202-18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 중에<실용>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실용주의 만으로 작금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고 경제, 사회, 문화, 복지 전반에 걸쳐 성장을 이룩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세계화, 정보화, 첨단기술, 무한경쟁이라는 오늘날 환경속에서 개인과 조직에 요구되는 삶의 방식을 칭기스칸과 그의 푸른군대는이미800년 전…
  • 몽골최고관리자1,22602-18
    무인시대에서 기황후로 열연한 김혜리세계 제국의 종말칭기스칸에서 쿠빌라이가 이룩한 팍스 몽골리카는 영광의 시대의 정점이었다. 정점은 내리막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탁월했던 대칸 쿠빌라이가 80세의 고령으로 1294년에 타계했다. 쿠빌라이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숙원이중앙아시아에서 쿠빌라이에게 반기를 들었던카이두 정권 정벌이었다. 카이두는 제 2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