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를 찾아서 1: 만번 읽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

  • GT 이상기
  • 조회 585
  • 2014.03.0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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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성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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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성을 오르는 길에 만난 양떼들
ⓒ 이상기
고구려 역사를 찾는 여행은 요녕성(遶寧城)의 성도 심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심양이 고구려 유적이 분포되어 있는 동북 삼성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청주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1시간 30분쯤 지나 심양의 도선(桃仙: Taoxian)공항에 도착한다.

중국어로 '둥뻬이(東北-촌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낙후 지역인 이곳 심양의 첫 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공항이 생각보다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시설도 최고는 아니지만 좋은 편이었다. 출국수속도 아주 신속하게 진행됐다.

세관(海關)검사를 마치고 출국장으로 나오니 마중 나온 사람들로 복잡하다. 저쪽으로 우리 팀을 맞이하는 여행사 직원의 피켓이 보인다. 현지에 있는 중국여행사의 가이드 김영씨가 우리를 맞이한다.

차에 올라 먼저 연주성(燕州城)으로 향한다. 연주성은 등탑현(燈塔縣) 서대요향 관둔촌에 위치해 있다. 이곳 심양에서 약 두 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요양(遶陽) 방향으로 나 있는 심대(瀋大)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평지에 난 직선 고속도로를 한참 가다가 등탑참(燈塔站: Inter Change, 나들목)을 빠져 나간다.

이곳 중국에서는 나들목에도 참(站)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곳 등탑 나들목을 나온 다음부터 차는 포장도 안 된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천천히 달린다. 가이드도 이곳 연주성에는 3번 밖에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같은 답사팀이나 이처럼 궁벽한 곳을 들르지, 다른 대부분의 팀은 편하고 좋은 곳을 찾는 모양이다.

연주성이 있는 요양지역은 온통 옥수수 밭이다. 옛날 우리가 재배하던 옥수수와 품종이 비슷하다. 옥수수 대의 키가 크고 옥수수자루 역시 길고 크다. 지금이 벌써 8월 중순, 옥수수 수확이 한창일 텐데 옥수수를 따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는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이곳 동북 지방의 주작물이 옥수수다. 그리고 옥수수는 8월 중순까지는 따서 삶거나 구워서 먹는다. 우리 같으면 7~8월에 모두 따서 삶아 먹거나 파는데 비해, 이곳은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10월 초에 추수를 한다고 한다.

8월 중순이면 옥수수가 모두 익지만 건조를 위해 약 두 달 정도 밭에 그대로 내버려 둔다. 10월에 추수를 하면 옥수수 알을 모두 따서 창고에 보관을 한다. 그리고 이 옥수수를 갈아서 죽, 빵, 국수의 원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껍데기를 벗겨 옥수수쌀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옥수수술을 담그고, 나머지 일부는 동물의 사료로 사용한다. 그러고 보니 중국술인 배갈이 옥수수를 원료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연주성이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저 멀리 동쪽으로 산줄기와 석축들이 보인다. 훼손된 서문(西門)을 지나 난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양을 치는 중년의 남자가 40~50마리쯤 되는 양들을 이끌고 간다.

우리는 양들을 비껴 성벽 쪽으로 향한다. 성벽에 가기 전 잔디밭에 요녕성 인민정부가 공포(公布)한 '성급문물보호단위 연주성산성'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암 산성을 이곳에서는 연주성 산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곳에서부터는 산성의 정상 '점장대(點將臺)를 향해 올라가는 등산이다.

고구려식 산성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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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급 문물보호단위인 연주성의 표석
ⓒ 이상기
표지판으로부터 완만한 길을 올라가니 석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서문에서 성의 북쪽 사면을 따라 올라가다 동쪽 사면으로 바꾸면 정상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서북 방향의 저지대 부분은 훼손이 심한 편이고 북동 방향의 고지대 부분은 비교적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성벽의 아래 부분은 고구려 성의 특징인 들여쌓기를 했고 그 윗부분은 수직으로 쌓아올려 차단성(遮斷性: Blocking)을 높였다. 성벽이 잘 보존된 북쪽 지역은 성벽의 높이가 6~8m 정도며, 가장 높은 곳은 10m에 이른다. 그리고 성벽을 따라 밖으로 돌출되어 나온 공격용 치가 너 댓개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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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의 북쪽 사면: 밖으로 튀어나온 공격용 치의 모습이 분명하다.
ⓒ 이상기
북쪽 성벽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약 1km쯤 가면 성벽 안으로 점장대가 있다. 한 변의 길이가 6m쯤 되는 사각형의 내성으로 지휘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아마 산성에 위치한 지휘부를 점장대라고 불렀던 것 같다.

점장대에서 사방을 들러보니 관둔촌(官屯村)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완만하게 경사가 졌으며, 성에서 보면 적의 침입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그리고 경사면 건너편으로 멀리 높은 산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경사가 훨씬 가파르기 때문에 성을 공격하기가 쉽지 않고, 남쪽으로는 태자하(太子河) 서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자연스럽게 해자 역할을 한다.

네 방향 중 유일하게 서쪽이 평평하고 오르기 쉽지만, 그곳에는 서문을 설치하고 군사들이 집중적으로 수비를 했을 것이다. 백암산성(연주성)은 바위산을 이용해 만든 천연의 요새로 이름 그대로 흰 돌로 이루어진 고구려의 대표적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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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성을 내려가는 두 여인
ⓒ 이상기
<삼국사기> 제19(고구려 본기 제7) 양원왕(陽原王) 3년(547) 7월조에 보면 "백암성을 개축(改築)하고 신성을 보수(葺)하였다"는 글이 나온다. 그리고 7년 9월조에 "돌궐병이 와서 신성을 에워쌌다가 이기지 못하고 백암성으로 옮겨 공격하므로 왕이 장군 고흘(高紇)을 시켜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대항하게 하여 이기고 적 천여 명을 살획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볼 때 백암성은 대단히 중요한 방어성이었고, 547년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암성은 비사성(대련의 금주) - 건안성 - 안시성 - 요동성(요양) - 개모성 - 신성으로 이어지는 대 중국 1차 방어선의 내륙쪽 후방에 위치하는 중요한 성으로 바닷가 쪽의 오골성과 함께 2차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백암성은 보장왕 4년(645) 이세적이 이끄는 당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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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심대(瀋大) 고속도로: 심양(瀋陽: Shenyang)과 대련(大連" Dalian)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주 2: 태자하(太子河): 본계와 무순의 경계를 이루는 노독정자산(老禿頂子山: 1,325m)에서 발원해 연주성을 지나 요양에서 혼하(渾河)와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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